
베드로전서 2:7-8. “그러므로 믿는 너희에게는 보배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건축자들이 버린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고, 또한 부딪치는 돌과 걸려 넘어지게 하는 바위가 되었다 하였느니라”
December 24, 2025. SaturDevo
예수님의 탄생에 관한 이야기는 마태복음 보다는 누가복음에서 더 풍성하게 보여집니다. 그러나 두 복음서를 읽다보면, 얼핏 무엇인가 많이 엇갈리는 것 처럼 보입니다. 누가 복음에는 요셉에게 나타나는 천사는 없습니다. 동방박사와 헤롯 이야기도 없고, 이집트로 내려갔던 예수님의 가족 이야기도 없습니다. 마리아가 성령으로 잉태하여 예수님을 베들레헴에서 나셨다는 사실 말고는 두 탄생이야기의 공통점은 없어 보입니다. 마태복음이 플라톤적이라면, 누가복음은 아리스토텔레스적입니다. 마태복음은 신비스러우면서도 이성적이고 율법적인 반면, 누가복음은 옛날 이야기를 듣는듯한 동화적이고 실제적인 장면들입니다. 이것을 학자들은 두 복음서의 대상 독자가 틀리게 설정했기 때문에 나타난 저자의 의도가 작용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누가복음에서 예수님의 나심은 세례 요한과 나란히 언급되고 있습니다. 먼저 세례 요한에 대한 수태고지가 있고, 이어 예수님의 수태고지가 있습니다. 그리고 세례요한의 출생이 있고 예수님의 출생으로 이어집니다. 수태고지에 나타나는 천사는 가브리엘 천사입니다. 마태복음과 틀린 점이라면, 마태복음에서는 꿈에 나타나는 사자는 마리아의 남편 요셉에게 나타나는데 반해 누가 복음에서는 마리아에게 나타납니다. 마태복음에서 언급되지 않은 천사 또는 사자의 이름은 누가복음에 언급된 가브리엘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한국 성경 마태복음에는 천사를 ‘사자(the angel of the Lord)’로 번역하고 있지만, 누가복음에는 ‘천사 가브리엘 (the angel Gabriel)’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문제는 천사가 실제로 마리아의 남편 요셉에게 나타났느냐, 아니면 마리아에게 나타났느냐하는 질문이 들게 됩니다. 무엇이 맞는 대답일까요?
누가복음에서는 마리아가 이야기의 전면에 나타나서 행동하는 반면, 마태복음에서는 요셉이 이야기의 주인공이 됩니다. 누가는 요셉을 거의 언급하지 않고 있습니다. 마리아를 설명하는 구절, “다윗의 자손 요셉이라 하는 사람과 약혼한 처녀” (눅1:27)와 “요셉도 다윗의 집 족속이므로” (눅2:4)하며 호적하러 가는 구절에서 요셉을 언급하고 있을 뿐입니다.
누가복음에 따르면, 요셉과 마리아가 살던 곳은 나사렛이었습니다 (1:26, 2:4). 그러나 마태복음은 그들이 나사렛에서 호적하러 왔다는 이야기가 없습니다. 그래서 요셉이 마리아와 정혼하고 살던 곳이라든가, 사자가 요셉에게 꿈에 알려준일 일어난 곳이 베들레헴일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마태는 그런 사건들이 베들레헴에서 일어났다고 분명하게 쓰고 있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의 예수님 탄생 이야기를 자세히 읽다보면 혼란스럽고, 당황스럽습니다.
게다가, 누가복음 2:2절은 논쟁이 되는 구절로 예수님의 탄생 이야기를 역사적 사실로 믿으려는 사람들의 생각을 더욱 흩틀고 있습니다. 구레뇨가 수리아 총독이었던 때는 AD 6-12 이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누가 복음에서 언급하고 있는 목동들과 시므온과 안나를 만나는 성전에서의 정결예식을 마태복음은 전혀 기록하고 있지 않고, 마태복음에서 언급하고 있는 헤롯과 동방박사들을 누가는 전혀 듣지도 못한 듯합니다. 이런 문제들이 Synoptic Problem (공관복음 문제)입니다.
이런 문제들을 어떻게 접근하며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요? 우리는 마태, 마가, 누가 복음서를 공관 복음서라고 합니다. 공관 (Synoptic)의 의미는 ‘같이 바라 보다 (view together)’ 또는 ‘같은 점에서 전망하다(view at a common point)’입니다. 같은 사건인 예수님의 탄생을 언급하고 있는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을 같이 놓고 보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두세사람이 같은 사건을 보고 그 사건을 기록할때도, 서로 각각 틀리게 기록하는 경우를 봅니다. 일어난 사건은 하나인데 두가지 서로 다른 이야기가 나오는 것입니다. 이것은 두사람이 각각 그 사건을 다른 입장에서 기록해서이고 또 두 사람이 서로 그 사건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다르기 때문일 것입니다. 같은 사건이라도 어린 딸에게 들려줄때의 이야기와 틴에이저인 아들에게 들려줄 때의 이야기가 틀릴수가 있습니다. 두 이야기가 모두 있는 그대로의 사실이지만 듣는 사람에게 맞게 들려주는 것입니다.
마태복음의 탄생이야기와 누가복음의 탄생이야기도 이와 같습니다. 마태는 유대인들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로 썼고, 누가는 이방인들에게 들려줄 이야기를 한 것입니다. 두 이야기를 같이 나란히 놓고 본다면, 한 이야기에 분명합니다.
요셉과 마리아는 나사렛에서 살았습니다. 나사렛에서 천사 가브리엘은 마리아에게도 나타나고, 요셉에게도 나타납니다. 그리고 호적하는 일 때문에 임신한 마리아를 데리고 베들레헴으로 갑니다. 그곳에서 여관을 잡지못하여 마구간같은 곳에서 아기를 낳아 구유에 둡니다. 목동들이 한 밤중에 찾아오고, 예수님이 태어나는 별을 보고, 동방에서는 현자들이 여행을 시작합니다. 팔일만에 성전에서 정결예식도 하고, 얼마동안(2년정도)은 베들레헴에 머물렀을 수 있습니다. 요셉의 조상의 땅이기에 아마도 베들레헴에 자리를 잡을 려고 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는 동안 현자들은 헤롯을 만나고, 예물을 바치며 예수님을 예배한 현자들이 돌아가자, 천사는 다시 베들레헴에 있는 요셉에게 타나나서 이집트로 갈것을 이야기해주고, 헤롯은 두살이하의 어린아이들을 죽이는 만행을 저지릅니다. 그후 헤롯이 죽자 천사의 말에 따라 유대로 다시 돌아오나, 아켈레오가 두려워 베들레헴을 포기하고 다시 나사렛으로 가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구약의 말씀을 인용하여 “성경에 기록되었으되 보라 내가 택한 보배로운 모퉁잇돌을 시온에 두노니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였으니, 그러므로 믿는 너희에게는 보배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건축자들이 버린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고 또한 부딪치는 돌과 걸려 넘어지게 하는 바위가 되었다 하였느니라. 그들이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므로 넘어지나니 이는 그들을 이렇게 정하신 것이라”(벧전 2:6-8)라고 적고 있습니다.
마태복음과 누가 복음의 예수님 탄생 이야기가 서로 맞지 않는 것에 의문은 갖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혼동되어 미혹되지 않아야 합니다. 두 이야기를 나란히 놓고 볼때, 우리는 그들의 이야기가 한 사건에 이야기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하나님의 아들로 이땅에 오신 하나님이시며, 그것이 역사적 사실임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