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ly Week (Tuesday)

온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정치, 종교, 지식인들의 도전을 진압하시다

누가는 날짜를 구별하지 않고, “하루는”이라고 언급하며 예수님의 가르침을 나열합니다(눅20:1). 요한도 역시 가르치심에 촛점을 맞추고 있고(요 12:20), 마태도 “성전에 들어가 가르치실 때” (마21:23) 로 시작하며, 이스라엘 지도자들의 도전에 응하는 장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단지, 마가 만이 “아침에 나갈때” (막11:20) 하며 다음날의 시작을 언급하고 있는데, 마가가 기록한 ‘무화과 나무 저주 /성전 청결/무화과 나무의 교훈’ 은 Chiasmus(대구법)이라는 하나의 문학적 구조안에서 이해해야 하지만, 이 사건들은 이틀에 걸쳐 이루어진 사건들입니다. 즉, 무화과 나무 저주는 월요일 아침에(막 11:14), 그리고, 무화과 나무 교훈은 화요일 아침에 (막 11:22-25) 일어난 사건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화요일 아침 성전에 들어가셨을때 , 먼저 대제사장, 장로, 서기관들이 나타나 예수님께 질문을 하며 도전합니다. 이들은 이스라엘의 공식적인 지도자들입니다. “무슨 권세로 이런 일을 하느냐?  누가 이런 일 할 이 권세를 주었느냐?”(마 21:23, 막 11:28, 눅20:2)  여기서 ‘이런 일’은 성전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의 상을 둘러엎은일, 병자를 고치는일, 가르치는 일들을 말하고 있습니다. 사실 예수님은 공식적인 관직을 받은 분도 아니고, 서기관의 권위를 인정받은 분도 아니었기에 체제안에 있던 이들에게는 자신들을 무시하는 행동을 하는 야인에 불과 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에게 되묻습니다. “ 요한의 세례가 하늘로서냐 사람에게로서냐 내게 대답하라?”(막11:30, 눅20:4)  그들이 딜레마에 빠져 대답하지 못할때, 예수님은 ‘포도원 농부 의 비유’를 들려주며 그들과 예수님의 관계가 어떤 관계인지를 알려줍니다. 마태도 이 도전끝에, 두아들의 비유(마 21:28-31), 포도원 농부의 비유 (마21:33-41막 12:1-12눅 20:9-19 ), 결혼잔치의 비유(마 22:1-14, 눅 14:15-24)를 차례로 들려주며,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사람인지를 말 해 줍니다.

모욕을 당한 그들은 바리새인과 헤롯당의 사람을 보내 예수님께 올가미를 씌울려고 합니다. 바리새인은 원리주의자들이고, 헤롯당은 로마주의자들입니다. 그런 그들을 통해 해온 질문은, “로마 황제에게 세금을 내야 하느냐 내지 말아야 하느냐?”(마 22:17, 막 12:14) 였습니다. ‘내야 한다’고 해도 또 ‘말아야 한다’고 해도예수님은 역적이 되고 맙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누구에게’로 질문의 촛점을 돌리시며, 그들의 질문이 악한 질문이란것을 들어냅니다.

그러자 이번에 부활이 믿지 않는 사두개인들이 와서 모세가 명한 levirate혼(남편이 죽은 과부가 남편의 형제와 결혼하는 관습)에 대하여 질문합니다 (마 22:24, 막 12:19). 이스라엘의 많은 제사장같은 귀족 계급들이 이 사두개파에 속해 있었습니다. 부활을 믿는 사람이라면 정말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이었지만, 예수님은 성경말씀(출 3:6)을 들어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 자의 하나님이시라” (마 22:32, 막12:27, 눅20:38)라고 가르치시며 그들을 경외케합니다.

이렇게 전 이스라엘에 최고라고 하는 지도자들, 지식인들, 종교인들, 귀족들의 악의적인 모든 도전을 물리치십니다. 이제 예수님은 하나님의 성 예루살렘의 왕이시며, 하나님의 성전에 주인이심이 명백해  집니다. 그러나 아직도 이스라엘의 수구세력들은 그것을 인정하기를 거부합니다.

 그러나 어떤 배우기를 원하는 한 바리새인 서기관이 공손히 묻습니다. “모든 계명 중에 첫째가 무엇이니이까?” (마 22:36, 막 12:28).  여기서 너무나 유명한 말씀, “첫째는,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 둘째는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라.” (막12:29-31, 마 22:37-39) 을 하십니다.

이제 예수님은 성경의 욧점을 가르치십니다. 사람들에게 묻습니다. “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였은즉 어찌 그의 자손이 되겠느냐?” (마22:45, 막12:37)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리스도(메시야)가 다윗의 자손이 되는것은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잊고 있었던 사실, 다윗의 자손 예수님이, 메시야이시고 다윗의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성경 말씀을 통하여 일러 주십니다.

그리고 종교지도자들의 위선(마 23:1-36 seven woes,) 또 과부의 동전 한냥의 헌금(ַַ막 12:41-44, 눅 )등 잘못을 지적하고 옳은것을 가르치시고, 나오시며 성전을 바라보십니다. 이 성전은 BC 19년부터 지어지기 시작해 주요공사는 헤롯이 살아있을때 완성됩니다. 그러나, 온전히 마치는 시기는 AD 63으로 80여년에 걸쳐 완공되지만 70년 로마의 공격으로 고작 7년후에 완전히 파괴됩니다 (눅21:6). 헤롯이 로마의 식양대로 웅장하게 지은 성전이 거대하게 보이지만, 그 속은 위선과 죄악의 소굴이란것이 들어났지만, 제자들은 그 건물을 바라보며 감탄하고 있는것을 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성전의 파괴를 예언하시고 (마 24:2, 막 13:2), 성전 맞은편 올리브 산에 앉으셔서 마지막 때에 징조 또는 일어날 일들(막 13장, 마 24- 25장, 눅 21장 )에 관하여 제자들에게 말씀해 주십니다.

한편 요한은 믿지 못하는 유대 지도자들에 반하여, 그리스 사람들 (이방인) 을 등장 시켜 ‘그들이 예수님 보기를 원한다’는것을(요 12:21) 말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방인들을 만나기 전에 할 일이 있음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 “내 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것이다” (요12:32), 라고 하시고, “ 내가 온 것은 세상을 구원하려 함이다” (요12:47)라고 제자들에게 말해 주며 ‘이방인들의 구하는 것’이 이루어질 것임을 말씀하십니다.

이 즈음에 예수님의 일정을 누가는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 예수께서 낮이면 성전에서 가르치시고 밤이면 나가 감람원이라 하는 산에서 쉬시니 모든 백성이 그 말씀을 들으려고 이른 아침에 성전에 나아가더라” (눅21:37-38).

Holy Week (Monday)

무화과 나무 저주, 성전 청결, 성전에서 백성을 가르치심

마가복음에 따르면, 예수님이 입성하여 성전을 모두 둘러보고 나자 벌써 때가 저물게 되어 열두 제자와 함게 베다니로 나가셨고(막11:11), 다음날 성전에 장사치들을 내 쫓는 사건(막11:15)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마태는 예수님의 입성후 바로 성전 청소까지 하시고 (마21:13) 묵으시기 위하여 베다니로 나가십니다 (마21:17). 이것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요?

고난주간 6일동안 예수님의 나날에 행적을 어느 정도까지는 상세하게 나누어 설명하고 있는 복음서가 마가 복음입니다. 한편 마태는 예수님의 행적을 시간적으로 나누어 따라가기 보다는 하신 일과 의미에 촛점을 두어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마태복음의 구조를 5개의 설교 (5 Discourses)로 나누어 설명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누가도 날짜와 시간 보다 예수님이 하신 일을 기록하고 설명하는데 더 노력하고 있음을 복음서를 읽어 내려가다 보면 알수 있습니다. 이부분이 복음서와 역사서의 차이를 상기해 보아야 할 부분입니다.

정복자가 정복한 성에 입성하였을때, 제일 먼저하는것은 이전의 체제와 관습을 폐지하고 새로운 질서를 세우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하여 처음 하신일이 성전으로 가시어 장사하는 자들의 상을 둘러업고, 그들을 내어 쫓는일과 성전의 질서를 회복시키는 것은(마 21:13, 막 11:17, 눅 19:46)  당연한 정복자의 수순입니다.

성전으로 가시던 예수님은 무화과 나무에서 열매를 찾다가 못 찾으시고 그 나무를 저주하는것을 (막11:14) 마가는, ‘다음날 아침’으로,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전으로 가시어 성전청결(성전 장사치를 내쫓는일)과 백성을 가르치고 고치는 일을 하십니다(막 11:17). 그리고 다시 이어 무화과 나무의 이야기를 꺼내어 (무화과 나무/ 성전청결/무화과 나무 순으로 이야기를 나열하여), 성전청결, 즉 바른 성전의식인 진정한 예배에 의미를 강조하며 믿음에 중요성을 시각화 시키고 있습니다. 무화과 나무에 대한 저주는 예루살렘에 대한 예수님의 심판을 비유적이며 상징적으로  보여주시고 있는 장면입니다. 열매없는 이스라엘  지도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이 Chiastic Structure 또는 Concentric Structure(대구법)은 내용을 강조할뿐만 아니라 부패한 성전의식과 위선적인 종교지도자(무화과 나무)의 관계를 연결시켜 언급하고 있습니다. 마태는 예수님의 입성과 성전청소를 한데 묶고 (하신일), 무화과 나무사건과 믿음을(가르침)  각각 묶어 이야기를 풀어갑니다. 마태도 무화과나무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고, 그것에 이어지는 예수님의 가르침은 마가의 기록과 같은 내용입니다.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마 21:21, 막11:23). 예수님께서 회복시키는 새로운 질서 안에서 그의 일꾼들이(믿는 자들이) 일하는 새로운 방식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기도를 통하여 일하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귀를 귀울입니다(눅19:47b).

예수님의 권위적인 행동과 가르침은 형식과 위선으로 자신들의 이익을 지켜오던 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는 위협적인 도전이었습니다(막 눅19:47).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잘못이 드러날때 그 잘못을 인정하고 고치려 하기 보다는 그들의 단점을 드러내는 사람을 해치려 합니다. 그들이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잘못을 드러내는 분이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을때 그들의 끝은 불을 보듯 훤할수 밖에 없습니다. 요한은 이러한 사실을 바리새인들의 입을 통해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볼지어다, 너희 하는 일이 쓸 데 없다.  보라 온 세상이 그를 따르는도다” (요12:19).

이글을 받는것이 불편하신 분은 “No”라고 문자 주시면, list에서 빼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Palm Sunday

** 주님이 사랑하시는 여러분과 함께 고난주간을, 예수님을 생각하며 보낼수 있기를 소망하며 나눕니다.**

종려 주일

종려주일입니다. 이땅에서의 예수님의 마지막 주간입니다. 그 마지막 주간에 예수님은 어디를 다니시고, 또 우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었나 다시 짚어보고 싶어 복음서를 펴봅니다. 부활절 한 주 전 주일을 종려주일(Palm Sunday) 이라고 하는데, 이날 예수님은 왕으로써 하나님의 성이라고 하는 예루살렘성에 입성하시기게 됩니다 (마태복음 21:1-11, 마가복음 11:1-11, 누가복음 19:28-44, 요한복음 12:12-19).

사복음서가 모두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 전날밤은 여리고 삭개오의 집에서 주무셨을 것으로 믿어집니다. 마태, 마가 복음서에 의하면, 고난, 죽음, 부활에 대한 예언을 세번째 하시고, 바로 눈먼 두 장님(마 20:30), 바디메오(막10:46)를 여리고에서 나오는 길에 고쳐주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리고 누가 복음에 따르면, 예수님은 여리고로 가시다가  장님을 고치시고(눅 18:35),  뽕나무 위에 있던 삭개오를 부르고, 여리고에 살고 있었을 세리 삭개오의 집에 들어가 먹는 장면이 나옵니다.  여기서 삭개오는 회개하고 구원받은자가 됩니다(눅19:1-9). 그리고 이어, “now when…”즉 “… 했을때”로 이어지며,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장면이 나오는것으로 보아, 이 일들은 같은날 일어나고 있음을 알수 있습니다. 즉, 여리고에서 일어난 일 (장님을 고쳐주시는 일)과 예루살렘 입성은 같은날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당시 여리고는 헤롯이 아우구스투스에게서 하사 받아 겨울 헤롯궁을 짖고, 그리스로마식으로 요새화한 곳으로 예수님이 머물만한 곳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삭개오의 등장으로 ‘죄인을 부르러 오신’예수님은 어떤 장소이건 죄인이 있는곳 여리고에 머무심을 봅니다. 여리고로 부터  입성을 준비하는 벳바게까지의 거리는 약14마일(22Km)정도 됩니다. 6시간정도 걸어 벳바게에 도착하였다면, 정오가 넘었을것입니다. 즉 예수님은 오후에 예루살렘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한편 요한 복음서에 따르면, 예수님의 승리의 예루살렘 입성 전에도 성전에서 백성들을 가르치시고, 유대지도자들, 바리새인들과 논쟁을 벌이십니다. 그들의 죄를 지적하고 그들의 위선을 드러내는 예수님을,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주장한다고 하여 예수님에게 유대인들이 돌을 던지려 하자, 유대를 나와 세례요한이 세례 주던 곳으로 피하십니다 (요 10:40). 그곳에서 나사로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다시 유대 베다니로 돌아가서 나사로를 살리시고 광야 근처 에브라임에 머물다가 종려주일 전날(요 12:1) 베다니 나사로의 집에 가서 저녁을 머고, 다음날 예루살렘으로 승리의 입성하십니다 (요 12:13).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은 단순한 입성이 아닙니다. 왕의 입성이고, 정복자의 입성이며, 승리의 입성이다. BC 550년경 페르시아의 고레스왕은 치장한 백마에 높이 올라타고 앉아 바벨론에 입성합니다. 그의 입성은 중동의 정치 판도를 바꿉니다. 포로로 끌려갔던 이스라엘백성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성전을 다시 건축하고 하나님을 예배하게 됩니다. 200여년후 알렉산더는 6개월의 포위 끝에 두로성을 정복하고 예루살렘으로 향합니다. 당시의 전세계가 그리스화 됩니다.  그 후 또 200여년후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으로 말미암아 오늘날 전세계는 하나로 묶이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어린 나귀를 타고 입성하시는 예수님의 입성은 일견 초라하기 보일지 모르지만, 구약2000년 역사의 성취이고, 인류의 승리이고, 하나님 사랑의 최고점을 이루는 입성입니다. 이날이 유대력으로는 니산월 10일입니다. 이날은  흠 없고 일 년 된 수컷 양을 골라 따로 두는 날입니다(출 12:3-5).  1500년전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원하여 내기 위하여 골라졌던 양 처럼, 예수님은 이날 온 인류를 죄에서 구원해 내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유월절에 쓰시기 위하여 직접 골라내신 흠 없고 죄없는 세상죄를 지고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 되십니다(요 1:29).

예수님이 공생애를 시작하시고,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제자들과 사람들에게 알게하신 후, 예루살렘으로 향하시며, 그곳에 다다를 때까지, 세번이나 거듭하신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과 부활 예언은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이땅에 오신 본질적인 이유를 설명합니다.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은 기독교의 핵심중에 핵심인 복음의 핵심입니다 (고전 15:17). 그러나 세번이나 반복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제자들과 따르는 사람들이 안타까워, 여리고에서 나오시며 장님의 눈을 뜨게하며, 눈을 뜨고 똑 바로 예수님의 마지막 일주일을 보길 원하시며,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십니다. 요한은 부활을 더욱 강조하기 위하여 예수님의 입성전에 나사로의 부활사건을 그려 시각화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입성하여 먼저 성전을 찾아 가십니다. 그리고 제자들과 함께 성전을 구석 구석 둘러 보시고 나니 벌써 때가 저물었고, 예루살렘을 나와 2km 정도 떨어진 베다니로 묵으러 나가십니다 (막1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