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벨론에서 귀환한 이스라엘이 실패한 것은 무엇인가?

스가랴 1:3, “그러므로 너는 그들에게 말하기를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처럼 이르시되 너희는 내게로 돌아오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November 13, 2021. SaturDevo

한때 시카고 이민교회들에게 성전 구입 붐이 있었습니다. 아직 자체 교회건물을 갖지 못한 교회는 교회건물을 사기 위해서 건축헌금을 걷었고, 다운페이를 준비한 교회는 론을 얻어 교회 건물을 구입해 놓고 건축헌금을 걷어 드리는 상황이었습니다. 교회들은 입심세고 재밌는 부흥사들을 초대해 부흥회를 종종 내지 매해 열었고 그럴때 마다 부흥사들은 건축헌금을 하는것이 얼마나 큰 축복이 따르는 일인지를 열변하였습니다.

학개, 스가랴, 말라기선지자는 포로이후의 선지자들입니다. 학개 선지서와  스가랴 선지서의 전반부는 포로에서 돌아온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성전 건축을 독려하고 있고, 말라기 선지서는 성전 건축 후 헤이해져 가는 이스라엘 사람들의 신앙생활을 지적하며 어려운 가운데 하나님을 신실히 섬기는 것과 십일조를 드리는 것이 얼마나 축복받을 일이라는 것을  말씀으로 증거합니다. 포로이후 선지서들을 이렇게 기억한다면 그런 사람은 분명히 교회에 열심히 다닌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포로에서 돌아온 이스라엘 사람들의 생활상을 역사서에서 보다 이들 선지서에서는 더 자세히 기술하고 있습니다. 학개 1:6, 11은 이들의 재정적 어려움을 말하고 있고, 학1:14은 사기저하를, 슥8:10은 사회적 문제를 말라기는 제사장, 지도자들의 부패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은 여러가지 어려움과 싸우며 잘 살아보려고 노력하던 이민자들의 상황과 공감대를 불러일으킵니다. 그런 상황에 말씀의 메세지는 분명한것 처럼 보입니다. 너희들에게 닥친 이런 어려움이 “무슨 까닭이냐 내 집은 황폐하였으되 너희는 각각 자기의 집을 짓기 위하여 빨랐음이라” (학1:9). “곡식 종자가 아직도 창고에 있느냐 포도나무, 무화과나무, 석류나무, 감람나무에 열매가 맺지 못하였느니라” (학 2:19). 스가랴는 성전을 가진 백성과 지도자를 9번의 비전을 통하여 보여줍니다.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말3:10). 이런 메세지를 들은 사람들의 마음이 어떻했을지는 분명합니다.

진실한 믿음은 사건(event)이 아니라 과정(process)입니다. 이들 선지자들의 말씀을 사건과 상황에 적용시켜 해석할려고 할때, 하나님의 말씀을 인간중심적 종교심리로 하나님을 조종하는 식으로 그 메세지를 왜곡시킬수 있는 여지가 많습니다. 그 왜곡된 메세지는 하나님의 은혜를 말하지만 진정한 하나님의 은혜를 부정하며 기복신앙을 외칩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은, 특별히 이들 포로 이후 선지자들의 말씀은 성전을 지어야 하는 일회성 사건을 배경으로 읽기보다는 더 큰 배경인 모세에게 하신 하나님의 약속 또는 하나님의 인류을 향한 구원 계획같은  주제를 염두에 두고 읽어야 자신을 속이는 인간중심적 종교심리에서 해방될 수 있습니다.

학개 선지자는 ‘성전을 위해 너희를 바쳐라, 그러면 하나님이 너희를 부자로 만들어 줄것이다’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학개 선지자 뿐만 아니라 많은 이전 선지자들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떠날을때, 어찌되리라는것을 말씀합니다 (학2:17, 신28:63-68). 그러나 그들이 하나님을 떠나 고통중에 하나님을 기억하고 기도할때,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를 네 조상의 땅으로 돌아오게 하시고, 또 네게 선을 행하사 너를 번성하게 하실 것이며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마음에 할례를 베푸사 너로 생명을 얻게 하실 것이다”(신 30:5-6) 라고 말씀하십니다. 나락으로 떨어졌던 하나님의 백성이 구원받는것은, ‘네’가 무엇을 해서가 아니라 온전히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말합니다(학2:9). 복음입니다.

‘이제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으니 너희가 어떻게 해야 되겠느냐?’가 욧점입니다. 비전을 보여주며(스가랴서) 나가야 할 길을 보여주십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성전은 지었지만 신앙에서는 실패합니다. 이벤트는 잘 치루지만, Process는 만족스럽지 못했습니다. 결국 스가랴 선지자는 “그날”을 바라봅니다 (슥9-14장). 예수 그리스도의 날를 기다립니다. 말라기 선지자도 이벤트에 성공하고 과정에서 퇴행하고 있는 제사장들과 백성들에게 외칩니다 (말1:9-10). 그러면서 그리스도에게서 눈을 떼지 못합니다.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보내리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준비할 것이요 또 너희가 구하는 바, 주가 갑자기 그의 성전에 임하시리니 곧 너희가 사모하는 바 언약의 사자가 임하실 것이라” (말3:1).

말라기 선지자는 하나님이 에서를 제치고 야곱을 사랑하였음을 말합니다 (말1:2-3). 야곱을 사랑하였다함은 그가 온전하여서가 아니라 그가 하나님을 의지하였기 때문입니다. 야곱의 죄가 하나님의 사랑을 끊쳐내지 못하였던 것 처럼, 우리의 죄와 실수도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으로부터 끊어내지 못합니다. 문제는, 그런데도 사건과 상황에만 눈이 멀어 하나님의 사랑을 인지하지 못하고, 귀환한 이스라엘 사람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돌아섰다는 것입니다. 돌아선줄 모르고 돌아선 이스라엘입니다.

믿음은 과정입니다. 이벤트의 성공이 하나님의 축복을 보장하지 못합니다. 죄와 실수가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로 부터 영원히 걷어내지도 못합니다. 이벤트는 필요할때 축복받는 수단이 아닙니다. 과정을 견고케하는 수단이어야 합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향하여 사는것이 믿음입니다. “너희는 내게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 하나님과 함께하는 길에 축복이 있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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