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다서1:4, “이는 가만히 들어온 사람 몇이 있음이라 저희는 옛적부터 이 판결을 받기로 미리 기록된 자니 경건치 아니하여 우리 하나님의 은혜를 도리어 색욕거리로 바꾸고 홀로 하나이신 주재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니라”.
December 11, 2021. SaturDevo
이단과 정통의 시비는 기독교 초기부터 이제까지도 끊이지 않고 바른 하나님을 바로 믿으려는 우리 중에 존재하는 중요한 문제 중에 하나입니다. 처음 인종을 제대로 구별하지 못하고 동양인 흑인 백인으로만 구별하던 때의 일입니다. “Thank God, Thank God, Praise God”을 연발하는 사람을 보고 ‘하나님을 정말 열심히 믿는 사람이로구나’ 하며 이야기를 나누던 중 ‘무엇인가 잘못되었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크리스찬인데, 당신은 종교가 무엇이냐’고 직설적으로 묻자, 자기는 ‘알라신을 믿는다’는 얘기를 들은적이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하나님’하지만 어떤 하나님을 믿는지는, 믿느냐 안 믿느냐보다 더 중요할 때가 많습니다. 초대 교회의 유다(예수님을 배반하여 판 유다가 아니라, 예수님과 야고보의 형제이고 ‘유다서’를 쓴, 유다를 말합니다)도 이런 문제인 거짓교사들의 가르침에 대해 그의 서신서에서 우리에게 경고하고 있습니다.
유다는 가만히 교회에 들어온 사람들, 즉 거짓 선생들, 즉 경건치 않은 사람과 은혜를 무시하는 사람, 그리고 주 예수님을 부인하는 사람들의 결국이 어떻할지를 예언하고 있습니다. 구약에 나오는 많은 배교자의 이미지와 행한 일들을 들어 비유하며, 그들과 같이 심판받을것이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멸망하게 할 이단을 가만히 끌어들여 자기들을 사신 주를 부인하고 임박한 멸망을 스스로 취하는 자들” (벧후2:1) 이니, 너희는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라”(3절) 고 말합니다.
유다의 주장은 1) 거짓 선생들이 존재한다(4절) 2) 그들의 가르침은 매혹적이나 위험하다(12-13절) 3) 그들은 분명히 정죄 받는다 (15절) 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말씀을 팔아 먹는 삯꾼 목자며(12절, 요12:12), 하나님의 은혜를 자신들의 방탕한 삶을 정당화 시키는데 사용하며(롬6:1), 하나님의 영광을 업신여기고 비방하며 하나님의 권위를 무시하는 삶을 삽니다(8절). 예수 그리스도을 의지하는 대신, 근시안적인 이득과 정욕에 눈이 멀어 멸망의 길을 스스로 택한 사람들입니다.
믿는 사람들(교회) 가운데 가만히 들어온 그들은 믿는다고 말하지만, 사실 부도덕한 생활에 젖어 있습니다. 그들이 아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는 어떤 죄도 용서해 주신다’는 왜곡된 단편적인 사실입니다. 디도서 1:16절은 그런 사람들을 이렇게 얘기합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시인하나 행위로는 부인하니 가증한 자요 복종하지 아니하는 자요 모든 선한 일을 버리는 자니라.” 그들의 부당한 행위에 근거는 유감스럽게도 은혜입니다. 그것을 유다는 ‘하나님의 은혜를 색욕거리로 바꾸’는 행위라고 책망합니다. 바울은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롬5:20) 하며 은혜가 덮지 못한 죄가 없다는것을 천명합니다. 그러나 이 풍성한 은혜를 잘못 이해하고, 잘못 적용하는 사람들은 그 은혜를 죄를 지을수 있는 라이센스로 사용합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더 이상 절대적인 진리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기 때문에 교회는 진리를 주장하는 것에 대해 사회의 압력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러나 유다서는 모든 믿는 사람들에게 교회에 침입하려는 거짓 가르침에 대하여 관대하지 말라고 촉구하는 상쾌한 목소리를 내고있습니다. 진리는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입니다. 포틀랜드에 있는 어떤 장로교회가 교회 예배에 알라와 무슬림 관습을 포함시키기 시작했거나, 몰몬 토크쇼 진행자가 자신을 기독교인으로 묘사하여 전국의 많은 사람들을 오도하고 있다는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4:16)라고 말씀하십니다. 유다는 믿는 사람들에게 진리의 편에 서서 진리를 위해 싸우라는 부름을 상기시키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더할 것이 없는 영원한 구원의 완전한 진리입니다.
유다서의 마지막 두절은 성경의 가장 아름다운 축도 중에 하나로 꼽히는 보석같은 말씀입니다. “능히 너희를 보호하사 거침이 없게 하시고 너희로 그 영광 앞에 흠이 없이 기쁨으로 서게 하실 이 곧 우리 구주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광과 위엄과 권력과 권세가 영원 전부터 이제와 영원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이 말씀은 영원한 진리인 복음의 또 다른 표현입니다.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100% 하나님이시고, 100% 사람이십니다. 즉 예수님이시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우리가 해야할 모든 일을 다 이루셨다’(요 19:30)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믿는 우리를 쓰러지지 않게 보호하시고, 모든 죄를 깨끗이 씻어 주시사 흠이 없는 사람으로 만들어 주시어, 마지막에는 담대하게 즐거움으로 하나님앞에 서게 하실분이 하나님이시라는 고백이며 하나님께 드리는 찬양입니다.
하나님을 믿느냐 안믿느냐도 중요한 문제이지만, 유다서는 어떤 하나님을 믿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의 어떤 죄도 용서하시고 씻어주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은혜가 우리가 죄를 지어도 되는 우리의 권리는 되지 못합니다. 권리가 있다면 그것은 죄에 빠진 사람에게 복음을 전할 권리입니다. 다른 사람을 긍휼이 여길 권리입니다. “어떤 자를 불에서 끌어내어 구원하라 또 어떤 자를 그 육체로 더럽힌 옷까지도 미워하되 두려움으로 긍휼히 여기라” (23절).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의 특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