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가복음 19:11. “그들이 이 말씀을 듣고 있을 때에 비유를 더하여 말씀하시니 이는 자기가 예루살렘에 가까이 오셨고 그들은 하나님의 나라가 당장에 나타날 줄로 생각함이더라.”
May 21, 2022. SaturDevo
일석이조나 일거양득은 한가지 일을 하여 두가지 이득을 얻는 말을 일컽는 말입니다. 요즘 말로 하면 일타쌍피며, 안자춘추에 나오는 고사, 이도 살 삼사입니다. 누가복음 19:11-27 에서 예수님은 한가지 이야기로 세가지의 가르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으로 발길을 돌리신 예수님이(눅9: 51) 여리고에서 삭개오의 집에 머물며 그를 구원하시고 ‘인자가 온 것은 잃어 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하시며 자신이 이땅에 온 목적을 말씀하십니다. 이제 예수님은 곧 예루살렘에 들어가실 것이고 예루살렘에서 하실일, 일어날 일들이 많은데, 아직도 사람들은 예수님과 예수님이 얘기하는 천국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지 못합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들어가시기만 하면, ‘하나님의 나라가 당장에 나타날 줄로 생각’합니다. 사람들의 이런 잘못된 생각을 바로잡기 위하여 하시는 말씀이 ‘열 므나의 비유’입니다.
이 열 므나의 비유는 마태복음 25:14-30의 달란트의 비유와 많은 유사점이 있지만 핵심가르침은 다릅니다. 마태복음의 달란트 비유는 예수님의 재림을 암시하며, 마지막 때에 그 제자들이 어떻게 처신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는 것에 촛점을 둡니다. 마태복음 24, 25장은 말세의 징조와 일어날 일에 대해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24장 42절은 “그러므로”로 시작하며, 연속적인 네가지의 비유를 (마24:42-43, 24:44-51, 25:1-13, 25:14-30)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언급하며 경계하고 신실하게 기다려야 한다는 것을 반복하고 강조합니다. 반면, 누가복음의 열 므나 비유는 한 가지 이야기로 우리에게 세가지의 가르침을 주고 있습니다. 마태복음의 비유가 집중 사격이라면, 누가복음의 비유는 일석삼조의 산탄 발사입니다.
열 므나 비유의 가르침은 첫째, 바른 하나님 나라의 이해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두번째는 마태복음 달란트의 비유와 같이 믿는자들의 처신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세번째는 믿지 않는 자들, 예수님을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경고를 보내고 있습니다.
당당하게 예루살렘으로 발길을 옮기는 예수님을 보며 사람들은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하면 세상이 변할 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었습니다. 물론 왕으로써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들어가지만(눅19:28-44), 또 떠나야 할것을 비유에서 암시하십니다. “어떤 귀인이 왕위를 받아가지고 오려고 먼 나라로 갈 때에” (눅19:12)에서 ‘귀인’은 물론 예수님이십니다. 이 구절은 단순한 가정이 아니라, 당시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이 익히 알고 있는 역사적 사건을 기억나게 하고 있습니다.
헤롯대왕은 로마 2차 삼두정치의 거장 안토니우스의 비호를 받으며 왕권을 받아 유대땅을 다스립니다(BC 37). 그러나 악티움 전투에서 옥타비아누스가 승리했을때(BC 31), 헤롯은 다시 로마로 쫓아가야 했습니다. 그리고 옥타비아누스에게 뇌물을 주고 충성을 맹세하여 다시 왕권을 받아 유대를 다스리게 됩니다. 헤롯이 죽고 그의 아들 아켈라오가 유대를 다스리게 되었을때, 그도 로마에 가서 왕권을 받아오게 되었습니다. 왕들이 왕권을 받으러 로마에 갈때마다, 그들만 간것이 아니라, 그가 왕되는 것을 반대하는 유대인들도 사절단을 로마에 보내어 그들의 왕권받는 것을 반대하는 로비를 벌이곤(눅19:14) 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실때 모든 유대인들은 무슨 말씀을 하고 있는지 그 상황을 알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말씀을 통하여 자신이 왕으로 이땅에 오심으로 천국이 이땅에 임했지만 (마4:17) 유대왕들이 왕권을 받으러 로마감으로 잠시 자리를 비운것 처럼, 예수님도 하늘에 올라가셨다가 다시 오실것임을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이것이 “Already, but Not Yet”이라는 신학적 개념입니다. 즉 예수님의 초림으로 천국은 ‘이미 (Already)’ 우리 중에 임했지만 예수님의 재림까지는 아직(Not Yet) 온전한 천국이 임한 것이 아니다’라는 개념입니다.
그리고 두번째, 열 므나의 비유는 달란트의 비유처럼 늦어질지도 모르고 언제일지 그 날과 때는 아무도 알수없는(마24:36) 예수님의 재림때 까지 믿는자들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능력대로 신실하게 살아갈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13절). “귀인이 왕위를 받아가지고 돌아와서 은화를 준 종들이 각각 어떻게 장사하였는지를 알고자 하여 그들을 부르니”(15절) 하는 말씀은 예수님께서 반드시 돌아오신다는 확신을 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그 종들과 회계하는 모습은 예수님의 재림때에 믿는 자들에 대한 심판입니다. 이 심판은 생명의 부활에(요5:29) 따르는 심판입니다. 그러면서 믿는다고 하는 자들도 타락할수 있음을 일하지 않고 게으른 종의 경우를 들어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세번째 가르침은 믿지 않는 자, 예수님을 반대하는 자들에 대한 경고입니다. 아켈라오가 왕권을 받으러 갔을때, 유대인들의 로비로 그는 왕권을 받지 못합니다. 예수님에 대한 거부를 그 사건과 연결시켜 연상케 하며, 그러나 예수님의 재림은 분명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예수님이 왕 되기를 거부하는 바리새인, 서기관들이 심판 받을 것이라는 경고입니다. “그리고 내가 왕 됨을 원하지 아니하던 저 원수들을 이리로 끌어다가 내 앞에서 죽이라 하였느니라” (눅19:27).
열 므나의 비유의 이야기에서 예수님은 천국의 실제를 가르치고 계십니다. 욧점은 승천하실것과 다시오실것을 분명히 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종들에게 맡겨진 청지기 직무는 예수님의 다시오심과 직접적으로 관계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승천과 다시오심 사이에 시간(Delayed or for a long time)이 없다면 제자들의 청지기 직무는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우리 믿는 자들이 예수님 앞에 신실함을 보일수 기회가 있다는 것은 우리중 많은 사람이 생각하는 것 처럼, 더디 오심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더디오심이 우리 믿는 자들에게 주어진 은혜인줄 믿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예수님의 왕되심, 즉 메시아 구세주 되심을 거부하는 유대의 종교 지도자들을, 즉 믿지 않는 자들에 대한 책망하십니다.
이 이야기는 예수님의 이도 살 삼사입니다. 너무나 잘 알려진 비유라고 그냥 흘려 읽는 대신 그 속에 있는 예수님의 가르침의 욧점을 찾아내는 은혜를 누리길 원합니다. †